411_If Then Eles 뒤주
시즌 4x11 If-Then-Else @뒤주 (@ricebox_dj)
If-then-else
작성자: 뒤주(@ricebox_dj)
관리자의 규칙에 어긋나는 처리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요 자산은 규칙을 어기라고 하거나, 규정에 없는 일을 하라는 요구를 쉽게 입에 담았다. 코드나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점을 고려하면 그럴 수 있지만, 프로그래밍 지식이 적기로는 마찬가지인 다른 주요 자산은 거리의 CCTV를 직시하며 이런 류의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생물학적인 차이인지 아니면 개체의 차이인지 이해하기 위해 머신은 그들과 비슷한 인종, 연령대인 인물의 행동을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했고, 그 사이 주요 자산은 재차 규정을 벗어나는 요구를 했다.
“네가 하라는 일은 다 해 줬는데, 데이트 한 번 못 도와줘?”
1.164초 동안 분석한 SNS 빅데이터는 주요 자산이 ‘절박하고 보기 안쓰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판단할 근거가 되었다. 서버를 노린 위협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발동한 긴급 조치에 따라 임시 아날로그 인터페이스가 된 주요 자산은 그에게 부여된 제한 시간보다 빨리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관리자가 좋아하는 식당을 알려 달라고 물었다. 감시에 따라 얻은 개인 정보를 개인의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전달하는 것은 미합중국의 법률과 관리자의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머신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고, 몇 번의 다른 방향의 질문 끝에 주요 자산은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위와 같이 말했다.
“해롤드가 좋아할 만한 식당이라도 추천해 보든지. 구글맵도 하는 일인데.”
좋아할 만한 식당, 장소라는 것은 날씨부터 변덕까지 수많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평소 주식의 80%가 소고기인 미국인조차 상황에 따라 초밥을 좋아하게 될 확률을 품고 있었다. 개개인이 평소 어떤 메뉴를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그 메뉴를 좋아했는지, 동석한 인간의 영향을 받는지, 어떤 성향의 인간을 좋아하는지 분석하는 일은 머신의 주요 기능 중 하나였다. 수많은 인간이 각각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다른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파악해 내는 일은 테러 위협을 방지하기 위한 일련의 프로세스 중 초기 단계에 해당했다.
그러니 개인의 GPS 데이터와 사용자에게 입력하도록 유도한 식당 별점 정보를 기반으로 근거리의 높은 별점의 식당을 푸시로 보내주는 것일 뿐인 구글맵에 머신을 비교하는 주요 자산의 발언은 상당히 모욕적이었다. 머신은 GPS는 물론이고 사용자 별점이 높은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심리 상태, 식당에 공급된 식자재의 신선도,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고객들의 요리에 대한 비언어적 반응, 관리자의 기상 시간, 기상에 따른 관리자의 선호 메뉴 통계까지 고려해 관리자의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주요 자산이 노려보는 CCTV의 붉은 불빛은 일정하게 깜빡거릴 뿐이었고, 주요 자산은 답답함을 토로하기 위함인지 머리카락을 결과 반대 방향으로 쓸어 올렸다. 주요 자산의 머리카락은 관리자가 좋아하지 않는 모양으로 뻗쳤다.
“널 만든 사람도 ‘인간적 상호작용’이 어려울 때가 있다고 했으니 뭐, 데이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기도 하겠지. 그 아버지에-”
[내-소리가-들립니까?]
아직 밤이 깊지 않았고, 베어도 쇼가 데려간 날이었다. 그리고 타이머도 43분은 남아 있어 시도해 보았지만, 벽을 보고 말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해 존은 반쯤 머신을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빈정거리기는 멈추지 않았던 존은 이어피스를 통해 들린 합성된 음성에 말을 멈췄다.
그 무응답을 긍정으로 이해한 머신은 주요 자산이 원했던 ‘성공적인 데이트 시나리오 달성을 위한 지시 사항’ 중 첫 번째를 전달했다.
[머리카락을-정리-하세요.]
* * *
맨해튼은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고, 오후에 잠시 비가 와 습도도 적당했다. 공기에서 낙엽 냄새가 진하게 나는 것이 기분 좋다는 SNS 데이터가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업로드되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지 않고, 아침도 아니니 주요 자산이 관리자에게 번호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하기는 곤란했다.
- 해롤드, 영화 보러 갈래요?
라고 주요 자산이 제안했을 때, 관리자는 82%의 확률로 완곡히 거절 의사를 밝힐 것이다. 각자 퇴근하자고 제안할 확률이 그중 가장 높았고, 피곤하다고 할 확률이나 못 들은 척할 확률도 상당했다. 왜 그런 제안을 하는지 미심쩍어할 확률은 11%였으며, 어떤 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물을 확률은 7%였다. 그리고 7%의 확률에서 이어지는 주요 자산이 제안할 수 있는 옵션 중 관리자가 마음에 들어 할 선택지는 없었다. 현재 흥행 중인 상업 영화는 관리자의 구미에 맞지 않았고, 그냥 가서 아무 거나 보자는 말을 하면 관리자는 주요 자산에게 그냥 집에 가시라고 할 가능성이 높았다. 주요 자산의 집에서 관리자가 좋아하는 와인을 마시며 관리자가 좋아하는 고전 영화를 보자고 제안한다면 98.3%의 확률로 거절할 것이고, 그중 또다시 높은 확률로 주요 자산과 머신의 야합을 의심할 터였다. 1.7% 정도는 관리자가 수락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영화를 보자는 제안에 대한 반응에 대한 확률을 함께 고려하면 그야말로 주요 자산이 복권에 담청되는 확률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러 가자는 제안은 합리적이지 않았다. 머신은 ‘영화 관람 제안’이라는 옵션을 성공적인 데이트 시나리오에서 소거했다.
마침 시간대는 관리자가 조금 늦은 식사를 하기에 적절했다. 주요 자산의 희망대로 식사를 하는 것도 괜찮을 터였다.
- 해롤드, 저녁 먹으러 갈래요?
라고 주요 자산이 물으면 관리자가 긍정적인 답을 할 확률은 40%였다.
- 핀치, 저녁 먹고 갈래요?
라고 주요 자산이 물을 경우 수락할 확률이 60%로 높아졌다. 지나치게 사적으로 느껴지는 억양과 단어 사용을 자제할 경우 어느 정도 관리자의 의심을 완화할 수 있었다. 주요 자산의 머리카락과 옷매무새를 조금 더 관리자의 기호에 가깝게 정리하는 데 성공한다면 수락 확률은 최고 65%에 이를 수 있었다. 적절한 조명과 가벼운 대화가 전제된다면 70%까지도 기대할 수 있었다.
- 생각해 두신 메뉴가 있나요?
관리자는 45세에 첫 대장 내시경을 받은 뒤로 오후 8시 이후에는 육류를 즐기지 않는 습관을 들이고 있었으므로, 스테이크 같은 무거운 메뉴는 언급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물론 특별한 경우라면 9시까지도 스테이크를 주문할 수 있었지만, 현재 관리자가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할 만한 요소는 없었다. 머신의 서버를 위협하는 세력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 것 정도는 관리자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부관리자가 생존한 상태이고, 부관리자가 머신의 서버를 위협에서 구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면 관리자가 마땅치 않아 하면서도 합류할 확률은 96%였다.
- 스테이크 어때요?
하지만 주요 자산이 같은 제안을 했을 때는 관리자가 완곡히 거절할 확률이 87%였다.
- 오늘은 조금 시간이 늦었네요. 다음 기회에 미스 쇼와 함께 가지요.
그다음 기회는 번호가 평균 주기대로 나오고 관리자와 주요 자산이 모두 살아남으며, 관리자의 건강 상태가 예년과 비슷하다는 가정하에 12월 21일 저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주요 자산이 동석한 저녁 식사가 ‘로맨틱’해질 확률은 없었다.
- 인도 요리 어때요?
- 이 시간에요? 늦은 시간에 먹으면 향신료 때문에 속이 안 좋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 태국 음식 어때요?
- 너무 맵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 중국 음식 어때요?
- 테이크아웃으로 먹자고요?
- 베트남 음식 어때요?
- 향이 너무 강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 한국 음식 어때요?
- 연기 냄새가 옷에 배서 싫다고 하셨잖아요.
관리자 취향의 이국적인 메뉴 선택지 중 많은 수가 주요 자산의 과거 행적에 의해 소거되었다. 이국적인 향과 맛을 좋아하지 않아 툴툴거렸던 과거가 이렇게 돌아올 줄 주요 자산이 알았겠는가. 물론 주요 자산은 지금도 모르지만, 머시는 그에 따른 인과를 하나하나 고려하며 관리자의 의심을 사거나 반박을 부를 옵션을 지워나갔다. 중국 음식이라고 하면 테이크아웃밖에 모르는 발언을 세 번이나 한 주요 자산의 행적으로 인스타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고메 중식점을 옵션에서 제거할 때는 다른 옵션을 제거할 때보다 0.02초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이 시간대에 가장 적절하면서 성공 확률이 높은 제안은 일식이었다. 머신은 관리자가 열람한 적 있는 유명 스시 가게의 재고 상태와 고객들의 음식평에 대한 도청 기록을 열람했다. 관리자의 리뷰 열람 시간과 스크롤 분량을 고려하면 성사 확률은 75%였다. 주요 자산이 미식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그동안의 이미지를 불식하려면 스시 가게의 오마카세를 먹자고 제안해야 했다. 그리고 오마카세의 의미와 기원에 대한 관리자의 말에 ‘재미 일본인이 미국 소비자에게 받은 영향’ 정도의 주제로 맞장구를 칠 수 있어야 했다.
“로딩 시간이 오래 걸리나 봐? 핀치는 거의 나갈 준비를 마친 것 같은데.”
답답한 듯 기껏 정리한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만들며 주요 자산이 속삭였다. 수락 확률이 72%로 떨어졌다. 아직 식사 제안을 수락한 뒤의 대화 시나리오는 불완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률은 낮아졌고, 수많은 가능성을 고려하는 데는 짧으나마 시간이 걸렸다. 머신은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기로 하고 ‘성공적인 데이트 시나리오 달성을 위한 지시 사항’ 중 첫 번째를 전달했다.
[핀치-저녁-먹고-갈래요-라고-제안하세요.]
“해롤드, 저녁 먹으러 갈래요?”
“저녁이요?”
주요 자산이 첫 번째 지시 사항을 정확히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 관리자의 물음은 부정적인 억양을 담고 있었다. 성공 확률은 34%로 떨어졌다.
머신은 주요 자산이 지시 사항을 정확하게 수행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 주요 자산은 표적이 몇 시 방향에 있다는 지시는 99.8%의 확률로 정확하게 따라 처리하기 때문이었다. 머신은 주요 자산의 인간적 상호 작용 능력을 하향 조정하는 방향으로 재평가했다. 그와 동시에 폭락한 성공 확률을 높여 놓을 ‘존 리스가 해롤드 핀치와 저녁을 먹어야 하는 이유 제시’ 옵션을 하나하나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했다.
- 당신이 좋아할 것 같은 가게를 봤거든요.
관리자가 이 답을 좋아할 확률과 꺼림칙하게 여길 확률을 합쳐, 이 답을 통해 실제 식사로 이어질 확률은 50%였다. 60% 미만이었으므로 도박에 가까운 확률이었으나, 관리자의 심리 상태와 타이밍에 따라 매우 긍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자길 미행했냐고 의심할 확률도 제법 높았으나, 주요 자산은 관리자를 미행한다는 티를 내면서 대화를 이어간 전적이 제법 많았다.
“시간이 늦었잖아요. 저녁 안 먹지 않았어요?”
하지만 주요 자산은 이번에는 머신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통계적으로 67%의 상대가 따분해하는 지극히 성의 없는 답변을 늘어놓았다. 나는 괜찮다면서 자리를 피할 확률만 높이는 답이었다. 머신은 주요 자산의 말에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시뮬레이션 확률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시뮬레이션 안정화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주요 자산의 입을 막아야 했다. 주요 자산은 고도의 시뮬레이션에 따른 수행이 얼마나 섬세한 접근을 요하는 작업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뭐… 그렇기는 하죠….”
관리자가 어물쩍 자리를 뜨려는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건 확률적으로 기적에 가까웠다. 관리자의 포만도를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는 없었으므로, 위산 분비 상태가 평소와 달라 관리자가 평소보다 허기진 상태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시나리오 성공 확률을 전반적으로 상향할 수 있었다. 이제 데이트 시나리오의 성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위협 요소는 주요 자산의 입이었다.
“그럼-”
[일식-가게에-가자고-제안하세요.]
이번에는 주요 자산이 엉뚱한 말을 늘어놓기 전에 개입하는 데 성공했다. 머신의 지시 사항을 이어피스로 들은 주요 자산은 가게의 이름과 위치까지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도 성공했다.
“오, 그 가게를 아시나요? 오마카세에 대한 리뷰가 좋던데요.”
가게의 예약 리스트를 해킹한 머신은 ‘존 잭슨’이라는 이름의 예약자가 외도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냈고, 그의 외도 상대와의 대화 도청 내역과 존 잭슨의 위치를 2블록 떨어진 사무실에 있는 부인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동시에 주요 자산에게 오마카세에 대한 훌륭한 대응 멘트를 전달했다.
“네, 가을 날생선이 맛있다더라구요.”
주요 자산은 이 번에도 성공적으로 머신의 지시 사항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가게의 주인이 그날그날 들어온 제철 식재 중 가장 신선한 재료를 골라 만들어 주는 메뉴를 먹는, 장인을 존중하는 마음가짐과 관련이 깊은 오마카세를 ‘가을 날생선을 먹는 것’으로 격하시킨 주요 자산의 언동은 머신의 시뮬레이션 확률 계산을 잠시 중단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주요 자산에게 제시한 멘트는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낼 수 있으면서 겸양을 유지하는 세련된 것이었다. ‘가을 날생선’ 같은 원시적이고 미국인 특유의 자문화 중심주의에 젖은, 관리자에게 어필할 확률이 전혀 없는 종류의 발언과는 천양지차였다.
“가을 날…? 네, 그럼, 예약은 해 두셨나요?”
“그럼요.”
존 잭슨의 예약 내역을 전달하지 않았는데도 주요 자산은 자신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머신의 계산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었다. 관리자가 상당히 허기진 상태이고, 그 일식집에서 식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과하게 친밀감을 표하고 무지를 자랑하듯 전시하는 주요 자산의 태도에도 식사에 관심을 보일 리 없었다. 주요 자산과 시나리오 성공 자체에는 다행인 일이었으나, 머신은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일련의 일들이 함정의 연속이 아닌가 하는 고려를 하기 시작했다. 주요 자산의 임시 아날로그 인터페이스 권한은 아직 41분이나 남아 있었다.
* * *
맨해튼의 고질적인 교통 정체를 고려해 머신이 제안한 이동 수단은 지하철이었다. 관리자와 주요 자산 모두 뉴욕의 지하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몇 정거장은 떨어진 거리였으므로 산책하듯이 걸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 자산은 이번에도 머신의 지시 사항을 무시하고 관리자에게 오토바이 헬멧을 내밀었다. 신체가 밀착된다는 점이나 교통안전 상의 이유로 관리자가 수락할 리 없는 제안이었으나, 관리자는 마땅치 않은 내색을 하면서도 거절하지 않았다. 머신은 주요 자산이 관리자를 태우고 가게로 향하는 동안 유의미하고 성공적인 대화 트리를 구축하며 서버 공격으로 스스로의 확률 계산 알고리즘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진단했다.
“존 잭슨입니다.”
주요 자산은 대사를 지정해 주는 머신의 지시는 높은 확률로 정확하게 따르지 않았지만, 머신이 제공한 정보는 곧잘 써먹었다. 정규 아날로그 인터페이스와 주요 자산의 기본적인 성향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이해한 후 머신은 향후 주요 자산에게 지시가 아닌 정보만 제공하는 것으로 조력 방향을 수정했다. 확률 계산을 위한 프로세스 부하가 이전의 배로 늘었지만, 주요 자산의 비효율적 반응을 제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머신은 주요 자산의 언동을 관리자에게 매력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 더해 그 방향을 주요 자산이 마음에 들어 할지도 함께 계산해야 했다. 주요 자산은 인간이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관리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보여주는 존재였다.
주요 자산과 관리자가 자리를 안내받는 동안 머신은 ‘사람은 잠재적 연애 대상이 자신과 같은 메뉴를 고르거나, 동의할 때 더 매력을 느낀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 주요 자산이 관리자와 같은 메뉴를 주문하도록 이끄는 데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머신은 메뉴를 기다리며 주요 자산이 관리자와 나눌 수 있는 4,985가지 주제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 장어가 나오면 좋겠네요. 정력에 좋대요.
정력과 관련된 일체의 대화는 피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관리자는 그런 농담에 정색할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조용한 일식점에서 주요 자산이 공공연한 추파를 늘어놓을 경우, 관리자의 허기진 상태를 고려해도 4번째 농담이 끝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날 확률이 76%였다.
- 후쿠시마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온 태평양에 퍼졌다던데, 들었어요?
방사능 유출과 관련된 대화는 식욕을 저하하고 다음과 같은 응답을 끌어낼 확률마저 있었다.
- 지금 같이 방사성 물질을 먹자고 여기 오자고 한 겁니까?
그리고 관리자의 물음 아닌 비난에 주요 자산은 다음과 같은 말을 늘어놓을 가능성이 높았다.
- 같이 방사성 물질을 먹는다니 로맨틱하네요. 안 그래요?
- 남자끼리는 아이를 낳을 수는 없으니 다행이에요. 유전될 걱정은 없잖아요.
- 체르노빌을 생각하면, 대양에 희석된 방사성 물질을 먹고 자란 물고기를 먹는 정도로는 그렇게 쉽게 피폭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관리자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시나리오는 실패한다. 방사능과 관련된 일체의 주제도 피하는 것이 합당했다.
- 예전에 같이 일한 카라라는 요원이 스시를 좋아했는데요, 왜인지 알아요?
고문과 관련된 농담성 화제도 피해야 했다. 관리자는 취조 대상을 젓가락으로 찌른 후 상처 부위에 와사비를 펴 바르는 CIA 요원의 무용담을 들으며 스시를 먹을 정도로 비위가 좋지 못했다.
주요 자산이 익숙해하고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주제 중 3,478가지가 관리자의 윤리관과 비위에 적절하지 않아 소거되었다. 주요 자산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주제로는 훌륭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으나, 일본의 젓가락 공예나 스시를 처음 먹어 본 마크 트웨인의 감상에 대해 말하라고 제안했을 경우 주요 자산이 그대로 따를 확률이 너무도 낮았다. 머신은 결국 가장 무난한 주제 중 하나인 4,891번째 주제를 선택했다.
“처음 스시를 봤을 때는 생선의 생살을 먹는다는 게 이상하더라구요.”
각자의 첫 체험에 대한 이야기는 제법 높은 확률로 연속된 대화를 끌어내는 주제였다. 관리자는 주요 자산의 스시에 대한 감상에 머신의 예측대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받아 이어 나갔다.
“미국에서야 리스 씨 같은 경우가 일반적이죠. 회는 미국의 전통 음식도 아니고, 내륙 지방에서는 애초에 생선을 먹는 일도 드무니까요.”
“오, 내륙에서 자랐나 보죠?”
주요 자산의 쓸모없는 부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관리자의 가늘어진 눈초리와 화제 전환뿐이었다. 주요 자산만을 가지고 관리자와의 데이트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 확률은 급격히 낮아졌다. 머신은 시나리오 성공을 위해 활용 가능한 다른 자산들을 확인했고, 사회 심리학을 이용해 주요 자산의 매력을 보강하기로 판단했다. 주요 자산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공 확률이 높은 옵션을 선택하고, 필요한 조처를 하는 동안 주요 자산은 관리자의 사적 정보를 침해하거나 그럴 수 있는 대화를 피하라는 머신의 조언을 무시했다.
“이 가게에는 전에도 와 본 적 있어요? 혼자 식사할만한 곳은 아닌 것 같은데.”
“...”
관리자가 좋아하는 음식, 가게, 색깔, 스포츠팀 등을 알아내려는 주요 자산의 시도가 세 자릿수를 기록했다. 아카이빙된 시도 중 89%가 실패로 돌아갔건만 중 자산은 이번에는 두 가지씩이나 되는 질문을 던졌다. 머신에게 손과 얼굴이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손으로 얼굴을 감쌌을 것이다. 하지만 머신에게는 신체가 없었고, 관리자는 머신의 어떤 계산에도 없었던 답을 내놓았다.
“뭐, 저에게도 사생활이 있으니까요.”
사적인 관계를 암시하는 답에 주요 자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고, 머신은 관리자의 대인 관계 아카이브와 그들이 앉아 있는 가게의 CCTV 기록 전체를 교차해 두 차례 훑었다. 이 가게와 관리자의 접점은 관리자가 2주 전에 읽은 음식 리뷰 칼럼뿐이었고, 관리자의 마지막 데이트 상대는 그레이스 헨드릭스였다. 그 후로 머신의 아카이브에 기록된 이성 또는 동성의 파트너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랑 여기 와 봤다는 거예요, 해롤드?”
주요 자산은 관리 자산 1인 라이오넬 퍼스코를 협박할 때와 유사한 표정으로 웃으며 물었다. 그 뉘앙스를 읽지 못할 관리자가 아니었지만, 관리자는 대수롭지 않은 낯으로 입술만 삐죽일 뿐이었다. 주요 자산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계란찜과 광어 회입니다.”
젓가락과 손 사이의 거리, 주변 사람들의 시야각을 고려해 주요 자산이 관리자를 공격할 확률을 계산하는 사이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버섯과 새우가 들어간 계란찜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관리자와 달리 주요 자산은 그의 앞에 나온 음식은 보지도 않고 제 몫의 간장 종지에 와사비를 풀기 시작했다.
“저도 예전에는 동료와 스시를 제법 많이 먹었는데 말이죠.”
“예전 ‘동료’요?”
카라 스탠튼과 와사비에 얽힌 비화를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음을 보냈지만 주요 자산은 빙긋 웃으며 이어피스에 연결된 휴대 전화를 음소거로 전환했다.
관리자가 와사비를 푼 간장에 광어 사시미를 담갔다가 입에 넣는 순간 와사비 고문법을 읊는 주요 자산으로 인해 349,761번째 시뮬레이션이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관리자는 입맛을 잃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가게의 종업원과 주인은 음식에 문제가 있냐고 묻고, 관리자는 음식은 괜찮지만 상대가 괜찮지 않다고 하며 자리를 뜰 것이다. 주요 자산과 관리자가 다시 스시를 먹을 일은 영영 사라졌다. 주요 목표 달성에 실패한 시뮬레이션을 종료한 머신이 휴대 전화를 강제로 진동 시켜 주요 자산에게 강하게 경고하는 691,378번째 시뮬레이션을 단순화해 진행했다.
- 휴대 전화 진동 착신에 대한 성의 없는 변명
- 평소 진동 모드를 쓰지 않는 주요 자산의 습관에 대한 정보에 근거한 의심
- 관리자의 자신에 대한 깊은 관심을 확신하며 떠는 넉살
- 주요 자산의 대화 회피 기술을 간파한 의심
- 맥락에 맞지 않는 공공연한 추파
- 아날로그 인터페이스 상태 사용에 대한 의심과 혐오감이 뒤섞인 방어적 태도
최악으로 치닫는 단순화 시뮬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와사비와 관련된 화제를 입에 담는 시뮬레이션보다는 다소 오랫동안 대화가 이어졌고,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주요 자산의 입은 당장 막을 필요성이 있었다. 데이트 성공 확률은 3.76%였지만, 지금 당장 선택 가능한 최선의 옵션이었다. 머신이 휴대 전화의 무음 모드를 해제하고 진동 신호를 보내려는 찰나, ‘사회 심리학적 임시방편’이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가게에 나타났다.
“존, 이게 무슨 우연이예요!”
“피어스 씨?”
“당신 보스도 함께 있었군요!”
“농담이겠지.”
주요 자산의 흔적을 찾는 인공 지능 개발을 의뢰했을 정도로 주요 자산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감시 대상 로건 피어스는 머신이 보낸 CCTV 화면 캡처와 위치 정보에 즉각적이고 성공적으로 반응했다. 크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잠재적 연애 상대가 유독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원리는 아주 간단했다. 사회 심리학회의 보고 자료가 없어도 머신은 ‘뛰어난 이성 또는 동성의 연애 감정에 기반한 관심 표현’이 꺼져가는 연애 감정을 되살리는 불씨가 될 수 있음을 70만 개 이상의 감시 기록으로 뒷받침할 수 있었다. 때로는 불씨가 지나치게 크게 살아나 새 번호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관리자는 질투심에 감시 대상이나 주요 자산을 살해할 계획을 세울만한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주요 자산의 목숨이 위험해질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와, 키 크고 잘생긴 것도 모자라서 젓가락질도 해요?”
감시 대상의 호들갑에 주요 자산과 관리자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시뮬레이션과 달랐다. 67%의 확률로 관리자는 무표정에 동요를 감춰야 했고, 56%의 확률로 주요 자산은 불편해하면서도 거들먹거려야 했지만, 실시간 피드 속의 관리자와 주요 자산의 표정은 거의 같았다. 둘은 극도의 불편함과 떨떠름함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여기 합석 가능한가요?”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오, 비용은 마음껏 청구해도 상관없어요.”
감시 대상이 블랙 카드를 흔들며 옆자리의 의자를 주요 자산의 옆으로 옮기려고 했고, 관리자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주요 자산은 젓가락을 움켜쥐었다. 임박한 폭력 사태는 정중하고 끈질기게 감시 대상을 가게 밖으로 안내하는 아르바이트생과, 주요 자산의 살발한 웃음과, 젓가락을 쥔 손등에 돋은 힘줄에 의해 겨우 저지되었다. 잔뜩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으며 주요 자산에게 손 키스까지 날린 감시 대상이 끌려나가자 가게 안이 한 차례 술렁였다. 로건 피어스가 몰고 온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간 뒤 수 초가 지나고서야 관리자는 잔뜩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가요, 리스 씨.”
“내가 부른 거 아니예요. 당신 머신이 연애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그런 거라구요.”
“예?”
어떤 시뮬레이션에서도 가정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주요 자산이 아날로그 인터페이스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밝히는 것은 너무도 관리자의 기호에 반하는 일이고, 주요 자산도 그걸 알고 있으므로 머신은 존 리스가 스스로 머신을 자신의 연애 사업에 끌어들였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할 리는 없다고 가정해 왔다. 그런데 주요 자산은 스스로의 입지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냈다. ‘주요 자산과 관리자의 데이트 시나리오’의 성공 확률은 0.07%까지 떨어졌다.
“지금 머신을 그라인더로 썼다는 말입니까?”
“와, 오늘따라 굉장히 새로운 면을 많이 알려 주네요. 해롤드.”
“리스 씨, 제발 좀 진지해 지세요. 대규모 감시 시스템에 대한 무제한 접근 권한을 겨우 저랑 데이트하는 데 쓰신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머신이 이상하게 굴지만 않았으면 충분히 값을 하고도 남았죠.”
주요 자산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테이블 위로 관리자의 손을 잡았다. 확률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관리자는 주요 자산의 손을 밀어내거나 피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관리자는 손가락을 얽어 오는 주요 자산에게 가만히 손을 내주고 있었고, 목과 귀의 피부색이 더 붉은 계열로 바뀌었다 돌아왔다.
“그래서 가게를 잘 고르셨군요.”
“음식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리스 씨는 계란찜은 마음에 안 드시나 보구요.”
“푸딩같이 생겨서 푸딩이 아닌 게 이상해서. 내 것도 먹어요.”
“오, 그럼 연어가 나오면 제 몫은 리스 씨에게 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당신이 더 먹어야죠.”
아무런 지시 없이도 지나치게 가깝고 사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머신은 가장 많은 프로세스를 할애해 감시하는 관리자와 주요 자산의 관계가 파악하고 있던 것과 차이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무리 관리자라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관리자가 감시를 피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다른 인간과의 관계는 머신의 감시 데이터에 남아 있었다. 최소한 추론할 수 있는 데이터라도 수집하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명백하게 향후 이어질 성행위를 암시하는 대화와 신체 접촉에도 머신은 이 관계가 시작된 지점이나, 최근의 이벤트 시점을 짚어낼 수 없었다.
감시 엔진 오류를 진단하자 ‘추가 핵심 지침’이 상위 주요 대상으로 노출되었다.
- 중요하지 않고 역겨운 감시 데이터 비공개 처리 프로토콜
비공개 처리되어 있던 수많은 원색적인 데이터가 머신의 서버를 어지럽혔다. 머신은 이 프로토콜이 주요 자산과 관리자가 처음 성행위를 한 날 자체적으로 만든 것임을 97번째로 깨달았다. 그리고 공개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한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주요 자산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둘이 입술을 비비게 될 확률이 89%임을 확인했고, 곧장 프로토콜을 가동했다.
“머신이 많이 놀란 모양이네요. 연결이 끊겼어요.”
“아직 시간은 남아 있지 않나요? 조금 이상하네요.”
“뭐.. 새아빠가 생기는 게 싫을 수 있죠.”
“존, 제발요.”
“당신 아이의 마음에 들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볼게요, 해롤드.”
머신의 감시가 완벽하게 사라진 식사는 해롤드가 원하는 만큼 느긋하게 이어졌다. 과연 지상 최대 규모의 감시 장비가 추천한 가게의 음식은 하나같이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