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_Prophets 오운
시즌 4x05 Prophets @오운 (@gorawith)
Prophets.
오운 @gorawith
+ 405 에피소드의 일부 설정을 차용한 au입니다(거의 도둑수준...)
+ 동명이인, 뱀파이어 소재 등이 나옵니다. 원작과도 사실 연관은 많이 없어요.
+ 수위 부분은 추후 따로 업로드할 예정(미완결 부분도 따로 업로드하겠습니다.)
-
[젠장, 그들을 불러들이는 게 아니었어. 이 음성을 듣고 있다면, 아니 사실은 제발 들어주길 바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를 찾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마. 도저히 쪽수가 맞지 않는 싸움이야. 내가 말했던가? 난 단순한 마약 따위의 거래일거라 생각했지, 그 배후에 연방수사국이 연계되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CIA는 벌써부터 뿌리가 썩어있다더군,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 ‘그들’은 어디에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우리가 위협이 될만한 존재인지 판단하는 근거는 간단해. 내게 이딴 경고를 보내는 것만 봐도 얼마나 고리타분한 작자들인지 짐작이 가능할거야. 이 이상은 알려고 하지 말라는군. 소피는 그들의 세계에서 발을 뗐어야 했어. 다만 나는 좀 걱정이야... 휘슬러의....] R. 12:00
[휘슬러?] S. 1:05
[휘슬러? 내 말 들려?] S. 1:06
[왜 내 전화 안받아?] S. 1:07
존 라일리는 약 이주간의 징계를 받는다. 사유는 ‘작전지 이탈’ 혐의. 지정된 임무 장소에서 벗어났다는, 다소 별 거 없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징계를 받았음에도 존 라일리는 아직 본부로부터 그 어떤 패널티도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라면 그가 아직까지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다. 존 라일리는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도대체 언제 깨어날 수 있는 겁니까?”
누워 있는 라일리를 바라보던 쇼가 의사를 향해 물었다.
“그 점에 대해선 저도 명확한 답변을 내리기 어렵군요. 어쩌다 몸의 상처가 운 좋게 낫는다 해도 그가 언제 깨어날지는 현재 전반적인 치료 상황에 따라 그 기간이 길어질 수도, 혹은 짧아질 수도 있다는 게 그저 제 소견일 뿐입니다. 하지만 전신에 워낙 내상을 심하게 입은터라 회복이 언제가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그 말은 지금… 이 양반이 존나 심각하다 그 소리네요?”
의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쇼가 착잡하게 라일리를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로 위험한 작전이었다면 나를 투입시켰어야지...” 쇼가 입술을 깨물었다. “무엇보다 이 상처는 꼭...”
동시에 두 쌍의 시선이 쇼를 향한다. 지금껏 그들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던 간호사 한 명과 레지던트 급 즈음으로 보이는 또다른 젊은 의사 한 명이었다. 존 라일리의 수술을 집도한 그들은 그날 수술대에 올라온 존 라일리의 모든 목격 현장에 대한 입막음을 당했다. 그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다만 이런 생각을 했을 뿐이다. 라일리 요원이 입은 상처는 평생을 지고 가야할 상흔으로 남을 것이다.
그들은 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쇼는 라일리의 상처를 유심히 쳐다보며 입을 연다. 그 목소리엔 충격에 빠진 떨림이 있었다.
“마치 짐승에게라도 물린 상처같잖아요…”
그 날 작전지에서 총 세 명의 요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간부측이 비밀에 부칠 틈도 없이 CIA 내부로 퍼져나갔다. 소문이란 그런 거였다. 그 전제가 사실이 되기 전까지 확신할 수 없는, 그러나 사소한 증거가 부인할 수 없는 진실로 뒤바뀔 때, 모든 것은 명확해진다.
존 라일리는 그곳에서 운좋게 살아남은거나 마찬가지였다.
[뱀파이어라는 터무니없는 전설을 믿는 자가 아직도 있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말았어요. 2년전 소규모 오컬트 및 초자연 현상과 관련한 온라인 웹사이트를 창시한 빌 윈스턴이 주축에 있었죠, 그 논란에는. 사실 논란이 될 것도 없는 해프닝이었어요. 요즘 시대에 누가 그런 걸 믿겠냐는 말이예요. 순전히 호기심으로 가입하거나(5만명의 회원들 중 대다수가 가입메세지에 그런 식의 표현을 적어냈다는군요), 만화광, 혹은 영화광들, 사회부적응자들로 득실대는 빌 윈스턴의 카페에 말이죠. 등업을 해달라고 요청한 대부분의 회원들이 젖도 못 땐 13살짜리 초등학생들이란 걸 밝혀낸 우리들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물론 아시겠죠? 얼마나 김이 빠지던지, 그 익명의 메시지 주인을 찾아내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고요. 단순한 연쇄 살인이었고, 이미 사건은 종결된지 오래에요. 이제와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소리죠. 빌 윈스턴이 목격했다는 살인 현장에 다량의 핏자국이 발견되긴 했지만, 그래요, 그 뿐이었어요. 그는 과대망상증 환자였고 몇 년 전 정신과에 입원한 기록이 발견됐으니까요.
그러니 소피, 제발 불필요한 체력 소모는 하지 말아요.
…그러나 당신이 정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겠다면 제가 아는 한 사람을 소개해 줄 순 있어요. 그 방면에선 꽤나 권위있는 분이죠. 하지만 명심하세요, 소피. 그걸로 당신이 얻어낼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
경선이 다가왔다. 뉴욕은 어느때나 다름없는 모습이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 속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했다. 해롤드 핀치는 뉴욕의 상원의웠으며 조만간 주지사 선거에 출마표를 내던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패했지. 말같지도 않은 이유로 말이야.
해롤드 핀치는 묵묵히 자신의 옆을 지키고 서있는 남자를 올려다본다. 공화당 출신이었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빌어먹을 양복이 끝내주게 잘 어울렸다. 보좌관 존 리스는 생각보다도 낯짝이 뻔뻔한 꼬맹이었고(그는 분명 사십대 중후반의 중년 남성이다) 핀치는 그런 남자를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존 리스의 아버지는 참전용사였고, 뿌리깊은 보수파에 그 자신도 집안을 따라 공화당원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정치계의 샛별이었다. 그런 역사를 가진 남자에게 핀치의 첫인상이 당연히 좋을 리 없었다.
“당신은 내가 본 관료들 중 가장 청렴해 보이는 인물이었어요.”
한두번의 형식적인 만남 이후 존 리스가 핀치에게 꺼낸 첫 마디였다. ‘웃기지도 않아’ 핀치는 그 말을 대충 귀로 흘려들으며 ‘청렴해 보인다는 건 지금 저자식이 내 외모만을 보고 그딴 말을 지껄였다는 건데’ 생각했다. 애초에 정치에 발을 들인 놈들 중 저렇게 입에 발린 말을 꼬아서 하는 인간들이 없지는 않았다. 단지 그건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거지. 존 리스는 화술에 능했고 신뢰감 있는 목소리와 순전한 집안의 도움으로 정치계에 꽤나 탄탄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워싱턴에 있어야 할 작자가 왜 뉴욕까지 와 궁둥이를 붙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필 그 자식에게 게이라는 사실을 들켰을 때, 그렇다. 해롤드 핀치는 정말로 목이 졸리는 기분이었다. 못해도 그건 타임즈의 2면은 꽉꽉 채울만한 스캔들이었고 그로 인해 당에 오게 될 타격, 그동안의 노력과 성취해온 모든 것들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지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자니 그건 목이 졸리긴커녕, 알아서 허드슨 강에 뛰어내려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내 커리어는 끝장나겠지. 내가 이룬 것들, 또 이뤄야 할 것들. …주지사? 말같지도 않은 소리. 이대로 실패한 정치인의 대열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게 될 판이었고, 핀치는 그걸 가만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저지르고 만 것이다.
해롤드 핀치는 존 리스의 목을 물어뜯었다.
H. 휘슬러의 실종 기록을 작성한 수사관의 문서는 곧바로 합동수사부의 토마스 우드와 작전지휘를 총괄하는 정보국의 조스 카터에게로 넘어갔다. 더불어 전직 요원 소피 세버텐의 활동 기록까지. 그리고 카터는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실종 기록과 그들의 범죄 사항은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는 게 바로 그 이유였다. 그들은 범죄같은 건 저지르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범죄자였다. 어쨌든 그건 사실이고 누구의 권한으로도 바꿀 수 없는 진실이 되버어버린 상태다. ‘그리어라면 모를까’. 이에 카터는 본부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 문서는 마치 양쪽 다리가 불구인 장애인을 향해 어떻게 2미터가 넘는 철문 울타리를 뛰어넘어갔냐고 심문하는 멍청한 짓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러나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해할 수 없네요. 정말로요! 실종된 공백기간을 그들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상한 사실로 단정지어 버렸다구요. 이래서는 아무런 협조도 할 수 없어요. 솔직히 이게 우기는 게 아니고선 대체 뭐죠? 이런 말도 안되는 종이쪼가리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작자들이나, 그걸 또 좋다고 제출한 그 망할 수사관이나 서로 아주 쿵짝이 잘 맞나보죠?”
“문서는 이미 저쪽에게 넘어갔다는 걸 유념하세요 카터. 흥분은 아무런 도움이 못 됩니다.”
도넬리는 검지 한 마디는 될 법한 두께의 서류들을 휘릭 넘기며 차분히 대꾸했다. 그 서류들은 담당 수사관이었던 숀 크리어에 의해 작성된 파일이었다. 사실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겉핥기식의 문서에 불과했지만. 하지만 그게 상부의 손으로 넘어갔다면 말은 달라진다. 카터는 이마에 손을 올리며 신음을 흘렸다.
“도대체가...이 나라의 기관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있긴 해요?”
“...흠. 그 발언에 대해선 어느 정도 동의할만 하군요. 무능한 자들도 돈만 있다면 쉽게 권력을 가로채는 게 바로 이 바닥이니까요. 그리고 우린 그런 자들을 위해 일을 하죠, 안타깝게도.”
“그게 이 나라가 돌아가는 빌어먹을 방식이라 이거죠”
카터는 담담히 대답했다. 도넬리는 그런 그녀를 어딘지 겸연쩍은 눈길로 쳐다봤지만 딱히 어떤 감정을 지니고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그런 말을 꺼냈을 이유에 충분한 타당함이 담겨있다는 걸 알아서였을지도. 도넬리는 그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그녀의 유일한 오점, 혹은 말할 수 없는 치부이자 가장 숨기고 싶어하는 비밀이 있다는 걸 알았다. 득과 실을 따진다면 그녀는 가감없이 실이 될거라 판단내버릴 그런 관계라면 말이다. 과거의 실수와, 혈연이란 피로 묶인 족쇄는 그렇게 그녀를 옥죄어왔다. 카터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뜬구름잡는 소리를 반복했으며 당연히 그 진실에 대해서는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조금이나마 신경쓰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도넬리의 침묵은 아마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스 카터에겐 충분했을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함이 가득한 카터의 얼굴은 금새 짜증어린 표정으로 뒤바꼈다. 비단 그 파일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상황에 불만이 찬 모습이었다.
“신기한 게 뭔지 알아요? 윗선의 입김이 부는 순간 거짓도 진실이 되어버리는 게 이곳의 빌어먹을 시스템이란 거예요. 도넬리, 취조실에서 그가 사라졌어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동시에 카터는 도넬리의 손에 든 파일을 홱 뺏으며 물었다. 더 이상 쳐다보지도 말라는 의미였다. 도넬리는 한순간에 빈손으로 전락한 자신의 손바닥을 약간 허망히 바라보다 다시 카터의 손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통하는 종이들로 시선을 옮겼다. 똑같이 수백장, 수천장으로 복사됐을 저 문서들이 이젠 무슨 의미가 있을까. 딱히 의미는 없을 행위다. 그런 카터의 처지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종이들은 힘이 없었다.
“누군가 그녀를 도와주기라도 했다는 의도로 말할 거라면 아쉽게도 저는 반대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도넬리는 냉정한 대답을 내놓았다. 도넬리는 그 말을 꺼내는 동시에 카터의 눈치를 살폈지만, 카터는 그걸 발견할 정도로 그에게 큰 관심은 없어 보였다. 도넬리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말을 잇는다.
“카터. 당신이 소피 세버텐과 어떤 밀접한 관계였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감정적인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갈 생각이라면 전 앞으로 당신이 꺼낼 모든 답에 부정을 할 수밖에 없어요.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지나친 감정적 대응은 올바른 판단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그건… 알아요. 하지만 그 사실과 관계없이 난 내가 느낀 모든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녀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죠. 맞아요,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렇다고 범죄자가 될 순 없어요. 왜냐고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녀는 제 발로 여길 찾아와 다시 홀연히 사라졌을까요? 그것도 스스로? 정말 이상하지 않냐는 거예요”
이상하다고. 도넬리가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든다.
“경고? 협박? 정말요…? 정말 그렇게 믿는다고요? 오 전혀요, 도넬리. 한 번 똑똑히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나보다도 더 분명히 알 수 있다고요.”
카터는 상기된 듯한 표정으로 호소했다. 그 모습이 워낙에 절박해보인 탓에 도넬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나 동의의 고갯짓이라기보단, 일단 생각해 보겠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실제로 도넬리는 카터가 주장하는 근거를 가늠하고 있는 중이긴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그 얘기는 마치… 소피 세버텐이 누군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카터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책상 모서리에 손을 짚으며 들리지 않는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역시 그런 거였나’ 그녀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그녀는 분명히 누군가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어요.”
분명히요. 카터의 말에 뼈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도넬리는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해도 그는 그 이상의 의미를 캐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넬리 그 자신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건 존재했다. 카터의 직감은 생각보다 예리한 면이 있었으니까. 사실 그녀 본인조차 모를만큼 그녀의 직감은 대체로 모든 상황에 들어맞았다.
곧이어 카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 화제에선 다소 벗어난, 도넬리로선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J'란 자는 누구죠?”
예상치 못한 질문이 튀어나오자 도넬리가 답지않게 몸을 움찔한다. 그가 고개를 돌려 카터를 바라보았다.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겁니까?”
“그러는 도넬리야말로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예요?”
카터가 순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본다. 도넬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카터의 표정에 그 외의 별다른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 자가 존 라일리를 반 죽음으로 만들어놨다면서요. 전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 라일리 요원의 목에 난 상처가…”
“그는 다쳤습니다”
도넬리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는 임무 도중 상대방의 총알을 맞고 쓰러졌죠. 다행히도 치명 부위는 가까스로 피했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일단은 그것이 상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죠. 총상에 의한 심각한 중태. 그를 공격한 건 그 J어쩌고란 자가 아닙니다.”
카터는 의아한 듯 눈을 굴렸다. “하지만 제가 알기론 분명 자신을 J라고 밝힌 자가-”
“거기까지만 하죠.”
도넬리가 카터의 말을 막아섰다. 그리고 단호하게,
“거기까지 하는 것이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좋을 것 같군요. 그 이상의 정보는 위험해요, 카터. 당신은 계속해서 소피 세버텐과 휘슬러 교수의 실종에만 주력해주세요. 이건 제가 하는 마지막 부탁입니다”
-
휘슬러 교수가 눈을 떴을 때, 사방은 캄캄한 암흑이었고 그는 자신이 왜 여기로 끌려왔는지 알고 있었다. 당신은 너무 많을 것을 알아. 남자의 목소리는 다정하지만 살갑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어떤 불안함을 감추고 있다는 게 더 맞는 표현 같았다. 그렇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느꼈다. 너무 많을 것을 안다라. 현재 자신은 CIA와 협조중이다. 그러나 지금은 납치당한 신세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CIA쪽에서 먼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소피 세버텐같은 근성있는 요원이 요즘 시대에 흔치 않은 인물임을 알았고 그들이 건넨 서면 상의 요구는 그럴듯한 조항 몇 개와 철저한 신변 안전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흔해빠진 마무리였지만 적어도 휘슬러를 안심시키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난데없는 국방부 해킹이라니. 사실상 휘슬러에게 주어진 터무니없는 요구는 단칼에 거절됐어야 했다. 하지만 세버텐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휘슬러의 생각보다도 끈질긴 여자였고, 사실 그 점은 휘슬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확실한 대답을 요구하며 물었다. ‘내 앞날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리란 걸 확신합니까?’
해롤드 휘슬러는 꽤나 이름을 알리던 전문 프로그래머였고 현재는 제자들을 양성하는 쪽에 힘을 쏟고 있는 컴퓨터공학 교수였다. 예전에 비해 실력은 많이 줄었지. 물론 그것이 의미하는 건 그의 비범한 프로그래밍 실력이 아닌 단순히 휘슬러 교수의 현 체력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잘나가던 시절의 프로그래며였던 휘슬러는 30대의 아주 건강한 청년이었고, 지금은 계단 한칸을 올라가는 일에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해졌을 뿐인 60대의 평범한 지방 교수였으니까. 적어도 그 때라면 이번처럼 무력하게 끌려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라일리 형사(지금은 CIA로 이직해 활동하는 중이고 그는 명실상부한 엘리트 요원이다)와 환상의 콤비를 이루던 30년 전이라면, 그는 분명 자신을 구해주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자신은 존 라일리를 구하느라 이 사단이 난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서로가 하는 일은 명백히 달라졌지만 아직까지도 돈독한 우정을 나눠가며 매월 둘째 주 일요일이 되면 싸구려 펍에 앉아 술잔을 부딪히는 둘이었다. 둘은 우연찮게도 같은 동네 주민이었고 동시에 (아직까지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미혼이었다. 주민들은 종종 그들에게 그렇게 살바에 차라리 서로 짐을 합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농담아닌 농담을 건네곤 했고 라일리와 휘슬러는 애매한 미소로 그 질문을 웃어넘기곤 했다. 무슨 일이 있지 않더라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던 둘의 관계는 언제나 거기 그대로, 우정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30년 전 혈기왕성하게 땀을 흘려가며 현장을 뛰어다니던 시절의 휘슬러는 존 라일리를 향한 묘한 감정과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꼈지만 거기까지였다. 휘슬러는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다.
마약반에서 이제 겨우 강력계 형사로 진급한 존 라일리에게 자신을 약점으로 내주긴 싫었거니와, 폐쇄적인 현장 업계에서 자신의 성향이 들어나는 것만으로 라일리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거란 사실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미래였다.
고백? 시기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휘슬러에겐 감지덕지였을 뿐이다. ‘물론 라일리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는 일이지’ 적어도 휘슬러 본인은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삶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곤 했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그건 분명 총격 사건이었다.
[그곳 관리인인 프레드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그날 밤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데요? 야간 순찰은 평소랑 다를 바 없었고…마을 사람들이 꽤 예민한 것도 이해는 가요. 선거철이니 뭐니 해서 요즘 난리였잖아요…]
수화기 너머 녹음된 음성이 흘러나온다. 건너편 이웃집인 콜린스 부인의 메시지였다. 한동안 휘슬러는 자신의 마을에서 일어난 소란에 대해 조사하기 바빴는데, 그건 전적으로 존 라일리 때문이었다. 라일리의 연락이 한달 째 되지 않자 이상함을 감지한 휘슬러가 결국 이를 알아보고자 마을 주민들에게 연락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딱 이렇다 할 정보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쯤 되니 그는 걱정이 앞섰다.
애초에 그 날 마을에 있었던 소란이 라일리와 관련돼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마이클 그 녀석이 앙심을 품고 온 동네에 비료를 뿌린 사건만 해도 불과 얼마 전이잖아요? 세상엔 못된 십대들이 차고 넘친다구요. 짓궂은 사고는 항상 사춘기에 빠져드는 청소년들이 저지르니까요. 그 애는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며 잡아때고 있다지만 흠, 글쎄요… 제 생각에 그 소란의 범인은 분평 마이클이 분명하다니까요]
마이클은 콜린스 부인의 조카였다. 누구보다도 확고하게 조카의 범행 사실을 단정지어버리는 콜린스 부인의 주장은 그렇다 치고서라도 사실 조지 마이클은 이미 지난 달 중학교 기숙사로 떠난지 오래다. 그렇기에 그녀의 주장은 딱히 신빙성이 없었다. 결국 휘슬러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날은 분명 토요일 밤이었지”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 토요일 밤이었는지 일요일 저녁이었는지, 전날 밤을 새가며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느라 휘슬러의 기억은 굉장히 단편적인 상태였고 지금은 벌써 그때로부터 한달이나 지난 시점이다. 확신하던 기억조차 충분히 의심해 볼만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휘슬러가 심란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총성 소리
존 라일리의 집
그리고 밤
밤
밤이라고
문득 휘슬러는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들 사이에서 켕기듯 걸리는 문장을 떠올렸고 이내 한 인물을 기억해낸다. ‘소피 세버텐’
어느 날 갑자기 강의실로 들이닥쳐 자신에게 노트북을 들이밀던 여자. 그녀는 다짜고짜 휘슬러에게 초짜 고등학생들이나 만들었을 법한 구닥다리 디자인의 웹사이트를 보여주었다. 기괴한 크리처들과 주술같은 문장들이 어지럽게 놓여져 있는, 조악한 웹사이트임에는 분명해 보였던 화면.
‘뱀파이어라고 아세요?’
차라리 UFO가 존재하냐고 물어보지 그래요. 그렇담 국방부 해킹으로 얻는 기밀 하나가 늘어나게 될텐데. 정식적인 협조 요청도 아니었고, CIA요원이 와서 한다는 소리가 뱀파이어니 뭐니 하는 어린애들 장난같은 얘길 지껄이는데 휘슬러의 반응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 세버텐이 그에게 건넨 usb 파일은 꽤나 놀랄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밤에만 일어나는 총성소리.
‘빌 윈스턴의 게시물은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언어의 나열뿐이지만 적어도 날카롭게 지적하는 한 가지 지점이 있어요. 그들은 총을 들고 다닙니다. 증거 인멸이죠. 송곳니가 뚫린 자국을 칼로 도려내 총알 자국을 남기는 것으로…’
“우린 대화가 필요해요.”
존 리스가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내뱉는 사이 해롤드 핀치는 눈 앞에 놓여진 보고서 결재 서류를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자신의 보좌진은 분명 열명씩이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 인간만 유독 제 눈앞에 알짱거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핀치는 창백한 손을 서류 위에 내려놓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차라리 내가 장관이라도 되길 바라지 그래요.”
“당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텐데.”
“내가 하는 얘기가 그게 아니란 걸 알잖아요.”
“무슨 얘기요, 방금 내가 얘기하던 것? 우리가 섹스 파트너라는…”
‘빠직’ 하는 소리가 핀치의 책상 아래서 들려왔다. 존 리스는 웃음을 참으며 “벌써 다섯 번째 손잡이예요, 의자 손잡이 따위에 예산을 까먹고 싶지는 않으시잖아요” 태연한 소리를 했고 이번엔 존 리스의 어깨위로 펜이 날아간다. 그러나 존 리스는 날아드는 공격을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것으로 가볍게 피했고 금테가 둘러진 고가의 펜촉이 의원실의 방문 가운데를 정확히 뚫었다.
“오늘따라 거치시네요, 의원님.”
핀치는 대답하지 않고 피곤한 얼굴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문지를 뿐이다.
“그럼 제발 그 입 좀 다물어줘요.”
대신 그를 향해 축객령을 내렸고 그래봤자 두어걸음 물러나는게 전부일 뿐인 존을 바라보며 핀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이 다가왔고 상원의원인 해롤드 핀치는 휴식이 필요했다.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오월의 뉴욕거리를 차가운 눈으로 흘긋이곤 거칠게 블라인드를 내린다. 극도의 예민함이 스쳐지나갔다.
‘인간들이란’
핀치는 자신의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지만 오늘은 참아야 했다. 현 주지사 제임스 머레이의 재선이 우세할거라는 방송이 여론 조사 통계를 들먹이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같은 민주당원으로서 핀치는 어쨌든 그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캠페인 매니저의 부재중 통화 알림이 하염없이 울리고 있었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연설이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열릴 예정이었고, 핀치는 그 빌어먹을 연설 현장에 참가해야 했다. 그 배경에는 캠프 매니저인 프랜시스의 간곡한 회유와 부탁이 깔려있었지. 무시하려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서있는 이 자리는 매사에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였다.
하필이면 오전 9시라니. 자신에겐 꼭두새벽이나 다름없는 시간이라는 걸 불평하면서도 핀치는 습관적으로 커프링크스를 채운다. 불평할 입장은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잘 버텨왔고 이런 일쯤이야 자신의 상태에 크게 문제가 될만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문제가 되는 건 따로 있지.
“뭘 그리 생각해요?”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송곳니를 내보이는 존 리스의 정강이를 가차없이 내리찍었다.
-
‘어느 정도는 계산을 두고 한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충동적인 행위였다니. 꽤나 의외였어요. 난 당신을 그렇게 보지는 않았거든. 당신에겐 약간의 신경질과 적당한 편집증이 뒤섞인 전형적인 관료들의 모습이 녹아있지만 그렇다고 치명적인 결점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것이 수천년간 당신을 둘러싸온 본능이었나? 당신은 자극에 약하지. 기억나요? 하마터면 날 죽일 뻔했잖아요. 화창한 아침 햇살이 떠오르지만 았았어도 난 그날 저세상을 맛보았을 겁니다. 그래도 이 목의 상처는 영광의 상처라고 부를 수 있겠군요.’
그는 자신에게 ‘축하한다’고 표현했다. ‘축하’ 한다고. 같은 아군이 생겨 즐겁지 않냐는 의미였다. 저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내가 널 물어뜯은 건 단순히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자신의 비밀을 빌미로 존 리스가 무슨 짓을 저질렀을 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온갖 말도 안되는 협박으로 유리할 만한 조건들을 내세웠을테지. 존 리스. 단단히 코가 꿰어 제게 놓인 탄탄한 앞날도 포기한 채 해롤드 핀치로 연줄을 옮긴 남자. 난데없이 보좌관을 하겠다 나선 어이없는 자식이었다.
‘알아서 몸 로비를 자처하던 걸’
‘그 미친놈은 자기 몸뚱이를 도구로 여기는 놈인가? 네 말대로 정말 어이없는 자식이긴 하군.’
‘애초에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챘는지도 의문이야. 젠장, 난 누구에게도 알려준 적이…’
‘해리, 미안하지만 넌 네가 게이라는 사실을 매우 티내고 다닌다는 걸 잊지마. 알만한 놈들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다만 건덕지가 없어 못건드리는 것 뿐이지. 우리의 뿌리깊은 정경유착 관계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작자들은 수두룩해. 내가 로비스트를 고용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거지.’
‘알고 있었다고?’
‘피빨아먹는 괴물이 아니라는 게 어디야? 정 불안하면 한 백년간 잠적하고 있던가.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결해 줄 수 있어’
‘아니 딱히… 잠깐, 그나저나 알고 있었다고? 네이선 너도?’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내가 언제 티를 내고 다녔는데?’
‘설마 너, 겨우 그런 이유로 그 새파란 애송이의 목덜미를 문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
‘어쩔 수 없잖아!’
‘…뭐? 아니 설마, 진짜 아무 계획도 없이 그런 무모한… 그딴 짓을 했다고? 진심으로?’
무슨 날벼락같은 소식을 듣기라도한 양 소스라치게 놀라던 네이선의 반응을 회상하자니 벌써부터 목이 탔다. 사람이, 아니 뱀파이어가 그럴 수도 있는거지. 그렇게까지 귀에 피가 나도록 잔소리를 퍼부울 일은 아니지 않는가.
[어미새가 된 걸 축한한다. 이참에 기억도 나지 않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봐. 두명분의 혈액 팩은 당연히 무리라는 거 알지? 안타깝지만 네가 희생해야 할 양이 많을거다 - N]
네이선의 문자메시지는 간결했다. ‘피를 원하면 니가 알아서 구하세요.’ 더불어 뜻하는 바도 간결했고. IFT계열사에 꽤나 큰 규모의 사립병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이선 잉그램은 순순히 그 빌어먹을 혈액팩을 내어주지 않았다. [배신자 새끼야] 핀치의 흔치않은 욕설이 메시지 창을 채웠지만 당연히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벌써 두 달째 적정량의 피를 공급받지 못한 핀치의 낯빛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고, 반면에, 어디의 잘나신 누구씨는 날이 다르게 얼굴에 화색이 아주 잘- 돈다. 원래도 재수없게 잘생겼는데 점점 더 잘생겨진다는 건, 솔직히 반칙 아닌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연설 준비 현장에서 핀치는 뚫어져라 한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고 그건 바로 이 사단의 중심인 존 리스였다.
해롤드 핀치의 사소한 실수로 동족이 되어버린 남자.
존 리스는 신생 뱀파이어였다.
-
그 미친놈은 내게 피를 빨리면서도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고. 아주 재수 옴 붙었지.
-
“카터!”
멀리서 카터를 부르는 로자먼드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메리카노를 목구멍에 들이붙던 카터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갓 뽑아낸 커피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혀가 데인 것 같은데. 카터는 중앙본부 로비의 한가운데서 그녀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CIA 내부에 입점한 커피 체인은 절대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원두에 석탄따위를 집어넣었나.
“나를 보자고 했다면서요? 미안해요, 잠시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베이츠 의원이 죽었어, 로즈.”
그 말에 걸어오던 로자먼드가 멈칫했다.
“얼굴이 짓물린 채였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로자먼드의 얼굴이 구겨졌고 그녀는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믿지 못하겠지, 그 베이츠 의원이 말이야.
“…언론에도 발표된 사실이에요?”
“아직은”
“개인적인 원한관계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 남자가 죽을 이유가 없잖아요? 물론 베이츠 의원이 최근들어 저희와 사이가 안 좋아지기는 했죠. 그치만 왜.... 아니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예요?”
“나도 모르겠다는 게 환장할 노릇이지. 알고 싶다면 진작에 알아냈겠지만 FBI은 아직도 나몰라라인 태도인데다 국장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야. 협조는 기대하지 말란 소리지. 예상은 했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가 없네. 애초에 그리어 그 인간이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노던 라이츠? 도대체 그 빌어먹을 게 뭐냔 말이야. 세버텐의 일도 그렇고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비밀이 얽혀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로즈, 넌 집행부 휘하였지?”
“그랬었죠.”
“좋아, 난 소피 세버텐의 녹취 기록이 필요해”
카터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고 로자먼드는 기겁하며 손사레를 쳤다.
“내가 그걸 빼돌릴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도넬리는 너의 상사잖아”
“단순한 징계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강등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정직 처분을…”
“그래서 대답은 ‘예’야 ‘아니오’야?”
“장난해요? 당연히 가능이야 하죠!”
로자먼드가 호기롭게 외쳤고 CIA 본부 직원들의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향하기 직전에야 카터는 가까스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었다. 대화가 새어나가 좋을 것은 없었다.
“조심해. 보는 눈들이 많아.”
카터는 아직도 손에 들린 아메리카노를 처분하지 못한 상태로 로자먼드의 귓가에 속삭였고 로자먼드는 눈동자를 굴리며 이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명심하겠다는 신호였다. 다시 손을 뗀 카터가 이번엔 작게 말을 이었다.
“그는 일전에 내게 더 이상의 조사는 그만두라고 말해뒀지만…그건 쉽지 않은 일이지. 나와 너보다도 보안 접근 권한이 높은 도넬리가 숨기려는 건 대체 뭐였을까. 도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걸까. 로즈, 내가 하는 거라곤 결국 겉핥기식의 수사뿐이야. 대충 상부에서 원하는 보고서나 제출하고 꺼져주는 게 다일 뿐이라는거지. 그러나 적어도 도넬리는 그 숀 크리어가 탐내던 소피의 심문을 가로챈 사람이라고. 어쨌든 숀 그 멍청한 작자는 아직도 이 사건이 뭔지도 모른채 그녀를 몰아세우기 바빴을거야. 도넬리가 수를 썼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걸? 진급과 실적에만 눈이 멀었지. 수사관들은 영 믿을 게 못 돼 로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수사국를 믿지 말란 소리야. 그들의 뒤에는 그리어 국장이 있어.”
뼈가 있는 경고가 튀어나왔고 로자먼드는 카터의 어느 대목에서 염려를 느끼는 듯 보였다. 약간은 겁에 질린 것 같은 표정같기도 했다. 로자먼드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베이츠 의원의 죽음에 그가 연관되어 있을까요?”
그리고 처음으로 카터의 표정에 곤란함이라는 것이 새어나왔다.
“내 말이.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파헤쳐야겠지. 도대체 이 중구난방으로 퍼져있는 사건들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뱀파이어가 태양의 열기에 타죽는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야 이젠 놀라울 것도 없지.’ 네이선은 그들의 정체가 언젠가는 수면 위로 떠오를거라 주장했고 물론 핀치는 동의하지 않았다. 인간들이 그들에게 심어놓은 편견따위야 사실상 뱀파이어들에겐 아쉬울 것 없는 귀여운 착각쯤에 속했으니까.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아. 핀치는 대꾸했고 네이선은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우리들을 타죽지도 않을 뿐더러 그깟 피 한방울 못마셨다고 함부로 사람을 덮치지도 않으니까. 십자가와 마늘?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지. 그리고 그놈의 관짝, 그게 문제야, 그딴 더럽고 좁은 공간에서 하룻밤 지새우기를 즐기는 뱀파이어가 대체 누가 있단 말이지?
해롤드 핀치는 극도의 깔끔함을 추구하는 뱀파이어였고 그런 성격은 그가 정치 출마를 하기로 결심한 순간에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줬다. 그에게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태도가 생겨난 것은 모두 그런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보기로나마 핀치는 분명 초창기 뱀파이어였다. 네이선과 그는 오랜 시간 철저한 이해관계로 이뤄진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수백년의 시간이 흘렀으며, 수백년의 축적된 기억들이 그를 만들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해롤드 핀치를 만든 지금 그는 꽤나 달갑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입을 벌려요.”
그리고 해롤드 핀치의 눈앞에는 벌거벗은 자신의 동족 하나가 누워있었다. 호텔 수건 하나로 중요 부위만을 가린 채, 만족스런 웃음소리를 목 안쪽에서 내고 있는 신생 뱀파이어. 그의 입 주변에는 붉은 핏자국들이 묻어있다.
“당신과의 섹스는 언제나 환상적이라고 내가 말했던가?”
저런 표정과 저런 얼굴로 말을 하고 있지만, 존 리스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흡혈의 쾌락을 즐기던 참이다. 핀치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과도하게 즐겼다. 그건 옳은 방식이 돼서는 안됐다.
“사람 죽어가는 꼴을 더 이상 내눈으로 지켜볼 수는 없으니까.”
“언제는 방관하겠다더니?”
“그쪽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걸 명심해요. 내가 당신의 사생활마저 관여할 순 없으니 이참에 한 번 더 강조하는 겁니다. ”
그게 당신이 말하는 뱀파이어의 품위냐고 존 리스가 질문했지만 핀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차갑게 실크 가운을 걸치며 입을 열었다.
“지금이야 모든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겠지. 뱀파이어의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옵니다. 당신은 인간들과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갖게 될테고 이성보단 감정의 충동에 더 동요하게 되겠죠. 이제 당신의 가슴에는 ‘죄책감’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조차 어느 순간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도 느끼고 있겠죠.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그것은 우리가 지고 다녀야 할 숙명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기억을 잃어서는 안돼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괴물이니까요. 사람의 겉모습만을 빌려썼을 뿐인…”
그러나 존 리스는 그런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입술을 한 번 훑고 말 뿐이다. 사소한 행동만으로 ‘나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를 미워할 수 없는 태도로 표현하는 남자. 그는 핀치의 생각보다도 골칫덩어리같은 존재였다.
“당신을 걱정시킬 생각은 없어요. 단지 예방 차원을 만들어서 나쁠 건 없다는 거지.”
그 예방차원이라는 것. 핀치는 그 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예방 차원이 나와 밤마다 몸을 섞는 일은 아닌텐데요.”
무심한 핀치의 대꾸에 존 리스는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곤 이내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핀치를 응시했다. 비꼬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내가”
“내가 당신을 배신이라도 할 것 같습니까?”
“가능성을 염두해 둬서 나쁠 건 없죠.”
“난 이미 당신의 겁니다.”
“누구 맘대로.”
가차없는 거절이 이어졌고 존 리스는 말없이 핀치의 등허리를 감싸안는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이 왜 주지사가 되려 하는지 알 것 같아.”
“이유는”
“당신은 뱀파이어니까.”
“그게 이유라고?”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는 핀치와 달리 그의 표정은 잠시나마 진중함을 담고 있다.
“베이츠 의원이 당신에게 껄떡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어요.”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고, 그와 동시에 핀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그런 죽음을 맞이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존 당신은…”
“당신의 정체가 들통날 수도 있었어요.”
“변명입니까?”
“입을 벌려요 핀치, 당신에게 내 피를 나눠주고 싶어.”
존 리스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당신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잖아요.”
이 진척없는 대화를 그만두고 싶다는, 배려없는 입맞춤이 다가왔고 핀치는 자연스럽게 그 움직임을 피했다. 난 당신과 즐길 마음이 없어. 이 일방적인 관계는 오직 당신이 원하는 것 뿐이잖아. 냉담한 반응이 돌아오자 존 리스는 살짝 기분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능구렁이처럼 짓던 미소도 보이지 않았다. 해롤드는 생각한다. 이건 옳은 방식이 아니라고. 이것이 맞는 방향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방종이나 다름없었던, 결국 모든 것이 악화되는 방식이란 걸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존 리스는 앞을 보지 않고 돌진하는 놈이다.’
그건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었다. 공화당 인간들은 모든 비난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존 리스가 유능한 인재라고? 그는 정계가 아니라 차라리 전쟁터가 더 어울릴 놈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지. 그는 주어진 힘의 권능을 너무나도 쉽게 이용했다.
뒷수습을 하겠다고 있지도 않은 업무들이 늘어난 건 핀치의 의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책임을 져야했다. 존 리스의 무절제한 탐욕. 흡혈과 살인. 핀치는 자신이 존 리스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종국엔 인정했다. 그가 매력적이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중독된 채 매일 밤 침대에서 뒹굴지, 서로의 목덜미를 애무하고, 송곳니를 박고, 서로의 피를 핥으며 우리가 어디로든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있어. 얼마나 웃기는 일이야. 난 그저 입막음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버린 거지? 절로 실소가 튀어나왔다.
자신은 존 리스의 살육을 방관하고 있다. 그러나 핀치는 도저히 그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국방성의 기밀 문서가 세상 밖으로 유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휘슬러는 자신이 납치될 것임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소피 세버텐이 훨씬 이전에 실종됐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누군가에겐 어렵지 않은 추리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 단서를 알아챌만큼 눈썰미가 좋은 인물은 없었고, 휘슬러는 자신이 저지른 말썽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휘슬러는 잠시간 기침을 한다. 방 안은 쾌적한 편에 속했지만 오랜기간 지내기에 좋을 공간은 분명 못되었다. 휘슬러는 어림짐작으로 이곳이 지하실이나 폐공장같은 시설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이내 어둠 속에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주기적으로 휘슬러를 방문했다. 휘슬러는 그가 등장할 때마다 풍기는 비릿한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남자는 언제나 한 가지 식단만을 그에게 내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프와 버석한 빵쪼가리 같은 것들. 휘슬러는 아사로 죽고 싶진 않았으므로 그 끔찍한 음식들을 입으로 집어넣는 것을 선택했다. 이번에도 메뉴는 바뀌지 않았다. 본능적인 헛구역질이 차오른다. 언제까지고 이런 곳에 갖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휘슬러가 숟가락을 들었고 남자는 오늘도 그런 휘슬러를 말없이 지켜본다.
‘CIA는 그 누구보다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조직이야. 본인들이 하는 일을 자각해 본다면 꽤나 모순적인 사실이지. 어쨌든 정보에 예민하다는 건 그만큼 숨기고 있는 비밀들이 많다는 얘긴데... 펜타곤 해킹이라고? CIA만큼이나 안보 문제에 폐쇄적인 국방부의 문건이 대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군. 그나저나 CIA도 외계인이 있다는 걸 아나? 모르는 비밀을 아는 척 하는 애송이들이 워낙 수두룩해서 말이지. FBI는 이제 앙숙이나 마찬가지란 사실을 진작 눈치깠을테고, 국방부는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지만 나사까지 등을 돌린 시점에선 아마 똥줄이 탔을 거야. 수사권이 없는 CIA입장에선 꽤나 타격이 큰 일이지.’
휘슬러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24시간도 채 되지 않을 거라 짐작했다. 이 수수께끼의 남자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지. 세버텐은 일반인인 휘슬러를 보호하고자 되지도 않을 섣부른 판단을 내렸다. 그녀가 헝가리에 망명(정확히 말하면 그건 도피였다)하며 보내왔던 날들. 존 라일리의 부재. 그리고 이 모든 건 어떤 식으로든 눈앞의 남자와 연관되어 있다.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군”
약간의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휘슬러는 그의 목소리가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말투나 어조로 보아 정가나 경제계에 종사하는 인물 같았다. 교육받은 집안 출신인가. 그렇다면 어느 시대 인물이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시기? 독립 전쟁? 그것도 아니라면 금주령 때인가? 젠장할, 자신은 뱀파이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뱀파이어라는 정의조차 불분명한 지금 이 수수께끼의 남자를 추론해본다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휘슬러가 작게 이를 갈았다.
“조그만 머리에 생각할 것이 많은가 보군요. 그래봤자 헛수고란 걸 알텐데요.”
“내가 그것조차 모를 거라 생각합니까.”
“애초에 당신이 발을 걸치지만 않았어도 생기지 않을 일이었어.”
휘슬러가 입을 다문다.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휘슬러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번뜩이는 붉은 안광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었다.
“내가 왜 범죄자가 됐어야 하는 거죠? 내 신분으로 체포 영장이 떴어요. 뱀파이어 조직이 FBI와 결탁이라도 맺고 있다는 사실이야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당신은 내게 설명을 해야 할 겁니다.”
“내가, 그쪽에게? 설명을?”
“당신도 내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아니까.”
“근거는.”
“아직까지 날 이렇게 살려두고 있잖아요.”
바람빠진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남자는 웃고 있었고, 그것이 전하는 의미를 휘슬러는 알지 못했다. 순식간에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송곳니의 감촉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라서(휘슬러는 뱀파이어라는 존채 자체를 그저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가령, ‘이 남자가 실제로 나를 물까’라는 근본적인 의문같은 거다), 실제로 그의 주변에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아니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남자와 눈싸움이라도 했을 지 모르는 일이다. 남자의 몸은 차가웠다. 그것이 휘슬러에겐 공포감을 주었다.
“그렇지. 난 원한다면 당신을 죽일 수도 있지. 하지만 틀렸어. 내가 당신을 살려둔 건...”
그러다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이내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해롤드?” 그리고선 어느 한 방향을 바라보며 휘슬러의 이름을 불렀고… 아니, 그건 자신을 호명한 것이 아니다.
휘슬러는 남자가 응시하는 방향을 따라 같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보이는 인영은 없었다. ‘동명이인이라고?’ 휘슬러가 이번엔 남자를 쳐다보았다. 분위기가 달랐다. 무슨 관계? 또다른 공범이 있기라도 한 건가? 곧이어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쯤에서 그만두시죠, 존.”
휘슬러는 이 목소리를 알았다. 상원 의원. 과거 페레즈와 설전을 벌이던…
“잠깐, 당신은…”
“우린 구면이었죠, 휘슬러 씨.”
남자의 얼굴이 휘슬러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휘슬러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그랬다. 그들은 구면이다. 몇 년 전 뉴욕의 국제 박람회에서였나, 머레이를 대신해 주지사 초선을 노린다는 해롤드 핀치는 휘슬러에게 인사를 건네왔었다. 고급 정장 수트를 입은 채 부하 직원들이 허둥지둥 따라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 선거철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대외 활동을 하는 모습에서 나쁘지 않은 첫인상을 느꼈다. 그런데 그가 여기에서 나타난다고? 왜?
“혼란스러운 표정이군요.”
“이 뱀파이어와 아는 사이입니까?”
“얼굴을 자세히 본다면 이 자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아챘을… 오, 그렇죠. 우리는 정체를 숨겨야만 했어요. 어떻게든 당신을 빼돌려야 했으니까.”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저 이 남자가 당신을 죽이려는 걸 내가 막아줬다는 사실 정도를 기억하세요. 감사하단 인사는 나중에 받죠. 실제로 휘슬러 씨 당신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었는지 알고는 있습니까?”
“당신이 말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당신은 이해해야 해요.”
도대체 뭘? 휘슬러가 이번엔 정말로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고 핀치는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이 뭣도 모르고 인터넷에 퍼뜨린 문건 때문에 내 부하는 뿔이 제대로 났어요. 당신의 목을 꺾어 바다에 처박겠다는 걸 겨우 말렸지. 휘슬러 씨, 당신의 눈앞에 있는 저 남자는 존 리스 입니다. 당신을 납치한 주범이자 예상 하셨겠지만, 뱀파이어죠. 그는 내 보좌관입니다. 그럼 이제 내가 설명을 할 차례군요. 당신이 범죄자가 된 이유와 소피 세버텐이 변절자로 낙인찍힌 이유를. 듣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이 생긴다는 건 알고 계세요. 이 얘기를 듣는다면 당신은 우리 쪽에 협조를 해야만 할 테니까요. 방법은 두 가지 입니다. 이대로 여길 빠져나가 남은 인생을 입을 닫고 조용히 살아가던지, 진실을 듣고 우리에게 협조를 할건지. 자,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얘기를 들어볼 마음이 생기셨습니까?”